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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숨이 막히도록 무덥던 더위도 나뭇잎을 스치며 불어오는 바람 앞에서는 그 힘을 잃고 만다. 그 누구도 찾지 않는 어느 산골 외진 골짜기에 홀로 피었다가 사라지는 이름 없는 들꽃의 향기에도 벌과 나비는 찾아 든다. 이 모든 것들은 자연의 조화이며 섭리이다. 나는 이렇게 자연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을 지금껏 내 작품의 모티브로 삼아 왔다. 이제는 내 나이 팔십 머리카락은 희다 못해 듬성듬성 빠지고 얼굴은 많은 주름에 몰라보게 변해있다. 이런 현상을 세월로 돌리기엔 너무나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아직도 내 손은 붓을 쥘 힘이 남아있고 작업해야할 대상이 있기에 나는 행복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자연을 주제로 우리의 얼과 정서가 담긴 정체성을 찾는 작품제작에 몰두 하고 있다. 2002년 프랑스 파리에서 가졌던 UNESCO 초대 개인전에서는 “자연 속에서”라는 명제로 전시를 했다. 이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과 우리의 정체성을 알리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더 나아가서는 자연을 사랑하는 내 마음 속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오늘을 일컬어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고 늙어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이 땅의 공기로 숨을 쉬며 또 이 땅의 흙냄새를 맡으며 살아가고 있다. 오늘도 자연은 커다란 이미지로 내 앞에 다가온다. 이렇듯 자연은 내게 있어서는 좋은 스승이며 언제나 변함없는 정다운 벗이다.

항상 새로움에 목말라 있는 만년 청년의 표본 | 글_김윤섭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

한국 전통미에 현대적 기법을 입힌 회화, 전통과 현대의 괴리를 허문 작품, 전통과 현대 사이 그 시간의 경계를 허문 회화, 전통적 수묵과 채색을 과감한 기법으로 재해석한 작품, 서정성 짙은 한국의 자연산수를 작가적 감성으로 함축해낸 조형미…. 유산(酉山) 민경갑(閔庚甲) 화백(1933~)의 작품에 대한 미사여구(美辭麗句)들이다. 이 표현에는 전통과 현대, 자연미 등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전혀 공존할 수 없는 두 시간 대가 그의 그림에선 보기 좋게 함께 어우러진다. 실제 민 화백의 그림에 등장하는 산과 자연은 보기에도 너무나 아름답다. 보는 이의 마음을 금방 밝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매력을 지녔다. 팔십 줄에 들어선 노화백의 작품에서 풍기는 ‘사람의 마음까지 정화시켜주는 예술혼’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연희동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자택 겸 작업장에서 2008년 지독한 투병생활까지 극복하고 ‘만년 청년의 열정’을 완전히 되찾은 민경갑 화백을 만났다.

창작, 그 마르지 않는 열정의 샘물

“창작하지 않으면 예술가가 아니다. 항상 준비된 자세가 중요하다. 자나 깨나 뒤에 늘 무기가 대져 있는 듯, 긴장감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작품엔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동양화는 운필의 능력이 중요하다. 순간에 포착하는 감각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림에 있어 창작의 힘과 설득력은 무한한 생각과 집념에서 나온다.” 쉬지 않고 쏟아지는 화백의 화론엔 인생철학과 삶의 지혜까지 담겨 있다. 듣는 내내 긴장감의 끈을 놓지 못하게 했다. 요약하면 아무리 유능한 작가라도 수십 년 세월동안 연구하고 또 연구하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그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그림실력이 제대로 빛을 발하기 위해선 중심을 지탱해주는 철학이 전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예술은 평생의 미완성’이라는 겸허한 태도의 작가적 원칙론이야말로 오늘날 민경갑 화백을 꽃피운 원동력이 아닐까. “운동선수가 시합을 많이 해야 실력이 늘듯이 화가도 열심히 그림을 그려야 좋은 작품을 얻을 수 있어요.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그림은 결코 그림이 아니죠. 창작에 대해 끝없이 목마름을 느끼는 것은 예술가로서 당연히 갖춰야 할 덕목이지요.” 민 화백의 그림 인생은 항상 ‘현재 진행형’이다. 이미 오래전에 ‘민경갑 스타일’이 널리 인정받고 있지만, 그에게 안주(安住)나 멈춤 그리고 타협이란 용납되지 않는 상식이다. 누구를 의식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와의 약속이다. 철저한 시간 관리로 삶의 리듬을 지켜나가는 것, 민 화백의 창작 욕구에 대한 마르지 않는 열정의 샘물이 되고 있다.

진정한 한국화의 정신적 원형 구현

“올바른 예술은 항상 창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붓 끝에서 일어나는 선에도 강약이 있고 대소가 있고 윤곽의 완급이 있듯, 동일한 대상을 보더라도 제 격에 맞는 본질적인 변화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어야 할 겁니다.” 한국화에 있어 붓은 참으로 많은 역할을 한다. 대상을 보고 판단하는 눈이고, 그 대상을 어루만지는 손이며, 동시에 대상의 본질을 꿰뚫는 심미안을 대신한다. 흔히 한국화에서 ‘일필휘지의 기운생동’을 높이 여기는 것 역시 같은 이치의 소산일 것이다. 새싹이 돋고, 이파리가 그늘을 만들고, 다시 낙엽으로 떨어져 땅의 거름이 되어 나무를 키우는 생명의 순환을 붓 하나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한국화의 진정한 매력은 자연의 외경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신적 원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 화백은 여기에서 ‘정신적 원형’을 말할 때 연상되는 전수(傳受)와 전통(傳統)의 개념을 혼동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즉 전수는 형태적인 측면에서의 전승이라면, 전통은 정신의 계승을 말한다고 해야 옳다. 무작정 우리 것을 살려야 한다는 구호에만 치중한다면 자칫 전수나 전승에 치우칠 수 있다. 반면 시류에 부합하지 않고 고유의 일관된 정도를 지켜나갈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정신적 원형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경갑 화백의 그림은 ‘창의적인 공간’을 선보인다. 비워 놓은 공간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채우면서도 동시에 비울 수 있는 공간은 결코 쉽게 얻기 힘들다. 민 화백의 그림은 바로 이 ‘창의적인 공간’을 증명해주는 명확한 표본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 민 화백에게 색은 곧 공이며, 공은 색으로 얻어진다. 화면 전체에 가득 들어찬 산(山)은 자연의 상징이면서, 그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구현해낸 창의적인 공간구성을 보여준다. 또한 얇은 화선지임에도 무한히 깊은 감을 자아낸다. 마치 수묵의 발묵법을 응용한 것처럼 보이는 산에 대한 표현은 영적인 교감을 통해서만이 완성된 것이다. “산은 알수록 더 경이로운 존재지요. 산에는 우리의 마음이 있고, 인생이 있어요. 세월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산은 언제나 그곳에 있지요. 전 그 산의 깊이를 사랑합니다.” 민 화백의 ‘산’ 예찬론은 흡사 산과 연애하는 사람처럼 보일 정도다. 아무리 큰 산이라도 그는 충분히 마음 안에 담을 만한 넉넉함을 지녔다. 아마도 인생을 보게 한 ‘산에 대한 외길사랑’은 학창시절, 심산 노수현 선생으로부터 “산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다면 산에 오르라”는 가르침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간혹 화면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색 띠’는 일종의 정신적 숨통 역할이다. 이 역시 우리 산하와 더불어 가장 한국적인 정신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가령 전국 어디든 동네마다 어귀에서 만나는 성황당의 오색 띠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 색색의 천 조각들은 개인 혹은 마을이나 국가의 안녕을 염원하는 수단이었다. 현세와 이상계를 이어주는 메신저이며, 희망을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의 표상이었다. 민 화백은 그런 무형의 염원을 품고 있는 오색 천을 가는 색선 혹은 얇은 색 띠로 화면에 옮겨 놓은 것이다. 이 역시 색 면으로 단순화된 산과 더불어 우리의 정신적 원형을 함축한 소재임에 틀림없다.

자연과의 조화-공존-무위-진여

민경갑 화백은 서울대학교 미대 3학년 재학시절인 56년에 이미 국전에 특선해 촉망받는 작가로 주목받았다. 졸업 후 화단입문 초기부터 추상성을 가미한 한국화의 획기적인 조형성을 선보인다. 이후 60년대는 세계성을 지니고자 우리의 감성은 지키되 전통적인 한국화의 관념을 파괴하고 구상성을 배제한 비구상 작품을 과감하게 발표한다. 당시 화단의 정서로서는 수용되기 어려운 용단이 아닐 수 없었다. 70년대 초반부터는 사실적인 풍경화를 위시해 구상화로 회귀한다. 80년대는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단계, 90년대 이후의 작품을 보면 모든 대상이 단순화되는 단계적인 변화를 보인다. 하지만 민 화백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작업주제에 내포하고 있는 작품명제의 변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산으로 상징되는 자연에 순응하며 그 안에서 나름의 삶과 철학을 표현하고자 했던 민 화백, 그는 스스로 195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표현방식과 주제의 변화에 따라 다음의 6기로 크게 나누고 있다.

한국화와 서양화 그리고 민경갑 화풍

최근의 작품들을 보면 색채의 부드러운 하모니가 더욱 돋보인다. 원래 서양과 동양의 색 쓰기는 기본 방법부터 다르다. 가령 서양의 색은 주로 바탕 표면에 얹어서 쓰인다면, 동양의 색은 바탕 깊숙이 스며드는 효과가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 전자의 경우 바탕 면과 색 층이 끝까지 독립된 상태로 층을 이뤄 완성되지만, 후자는 서로 완전하게 한 몸이 되어 완성된다는 차이가 있다. 더더욱 적절한 수분이 첨가된 색(안료)은 화선지의 미세한 틈틈이 스며들어 색이 푹 젖어 들어간 느낌이다. 민경갑 화백의 색감은 볼수록 신비로운 자태를 뽐낸다. 동양화 색감의 깊이와 서양화 색감의 시각적 비주얼이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된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우선 표면적으로 굉장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첫인상에 먼저 놀라고, 세세하게 쳐다보고 있으면 색감이 너울너울 춤추듯 움직임의 착시현상을 일으켜 두 번 놀란다. 이는 마치 수묵산수화의 미점준(米點準)이 수십 층 겹친 것처럼, 미세한 색 점들을 켜켜이 쌓아올린 결과이다. “아직도 내 그림여정은 미완성이에요. 마지막 순간까지 항상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것은 예술가의 숙명인지 모르겠군요. 바른 예술가의 삶, 화가의 삶을 선택한 이상 창작을 위한 괴로움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습니다.” 60년을 훌쩍 넘긴 세월 동안 오로지 그림만 그려왔고, 수없이 다양한 실험을 거쳐 누구나 인정하는 ‘민경갑 화풍’을 완성했다지만, 그는 아직도 새로움에 목말라 하고 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전통수묵화의 한계를 그 전통적 특질은 살리되 색다른 현대적 조형감각으로 재해석한 민 화백의 작품은 우리 회화사에 아주 남다른 의미를 남겼다고 평가할 만하다. 또한 동서양의 미감과 구상 비구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특유의 화면은 ‘정중동의 창조적 에너지’를 유감없이 발산하고 있다. 민경갑 화백의 그림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멈출 줄 모르는 그 창조적인 실험의 열정에서 비롯된다. 초심을 잃지 않는 열정이 살아 있는 한 민 화백이야말로 만년 청년의 표본일 수밖에 없다.